불교란
무엇인가
사사키겐고(佐々木玄吾)라고 합니다. 오늘은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만, 인도의 용수보살(龍樹菩薩)이라고 하는 분이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이라는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짧은 말로 불교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시오」 라는 질문에 「제악막작(諸悪莫作)」「중선봉행(衆善奉行)」「자정기심(自浄其意)」「시제불교(是諸仏教)」라고 짧은 말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면 나쁜 짓을 그만두고 좋은 일을 행하시오.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제불의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짓을 그만두고 좋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은 세살 먹은 어린이라도 다 아는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행함에 있어서는 팔십세의 노인일지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짓을 그만두고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라는 것을 용수보살(龍樹菩薩)은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쁜 짓이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십악(十悪)이라 해서 나쁜 짓이 열개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나쁜 짓이란,
A. 신업(身業) ……… 몸으로 짓는 죄
① 살생(殺生);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 생명을 끊는 것
② 투도(偸盗);물건을 훔치는 행위.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물건을 훔치는 것
「
너에게 줄께」 라고 하지 않았는데 물건을 훔치는 것③
사음(邪淫);삿된 음행을 하는 행위. 아내나 남편 이외의 타인과의 교제로 불륜
B. 구업 (口業) ……… 입으로 짓는 죄
④
망어(妄語); 진심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행위⑤
기어(綺語); 겉치레의 말을 하는 행위. 고맙지도 않은데 고맙다고 말하는 것⑥
악구(悪口); 남의 욕을 하는 행위⑦
양설(両舌); 여기저기 좋은 말로 이간질 하는 행위
C. 의업(意業)……… 마음으로 짓는 죄
⑧
탐욕(貪欲); 탐욕을 갖는 마음⑨
진심(瞋恚); 분노하는 마음⑩
치심(痴心); 어리석고 지혜가 없음.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하고, 밝음이 없다우리들의 생활에서 이것들 신(身)・구(口)・ 의(意) 삼업(三業)으로 이루어지는 악, 이것을 십악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나쁜 짓을 그만두고 좋은 일을 한다는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 좋은 일이란 즉,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인 것입니다. 십악(十悪)에 대해서 십선(十善)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십악의 앞에 불(不)이라는 글자가 붙습니다.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盗),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기어(不綺語), 불악구(不悪口), 불양설(不両舌), 불탐욕(不貪欲), 불진심(不瞋恚), 불치심(不痴心). 이것이 십선입니다. 좋은 일은 나쁜 짓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나쁜 짓을 그만두고 좋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제불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에는 과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과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십악의 결과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것은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면 십선을 행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십선의 결과는 천상에 올라 천인이 되는 것으로 이것이 십선의 과보가 됩니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는 살생하는 자는 단명다병(短命多病)이 되고, 불살생을 행하면 장수소병(長寿小病)이 된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십악을 그만두고 십선을 행하도록 마음을 써야 합니다. 어린이들에게도 나쁜 짓을 그만두고, 좋은 일일 행하도록 확실히 가르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기서 불교를 믿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속을 지킨다라는 것입니다만 항상 본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정직하게 있으면 그 과보로서 사람에게 속지 않는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연여성인(蓮如上人)도「진심으로 신심이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상당히 의지가 된다. 아무리 화려하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어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사회적으로 칭송받고 여러가지를 할 수 있어도 신심이 없는 사람은 진정으로 신용할 수 없다. 진심으로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은 신심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란성인(親鸞聖人)의 스승은 법연성인(法然上人)입니다만 법연성인은 어떠한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나는 가장 근본으로 있는 지혜가 없는 치심(痴心)의 법연방(法然房)」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법연성인은 그저 「염불의 법연방, 지혜 제1의 법연방」이라고 불리워져도 좋을 만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나무아미타불 오직 하나만을 전파한 사람이 법연성인이기때문입니다. 법연전집(法然全集)에는 여기저기에 「십악(十悪)의 법연방(法然房), 치심(痴心)의 법연방(法然房)」이라는 자기자신에 대한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요?
그것은
정말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가르침에 자기자신을 진심으로 비추어 볼 때 그 모습이「십악의 법연방, 치심의 법연방」으로 보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비추어진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면, 나무아미타불에 비추어질 때 그것은 자기자신의 자각의 부분 「십악의 법연방」「치심의 법연방」이 되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신란성인은 「지옥은 정해졌다. 지옥은 나의 거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연성인은 「십악의 법연방, 치심의 법연방」이라고 하고, 신란성인은「지옥은 나의 거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그것은 자기자신이 가르침에 비추어질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나라는 자각이고, 이 두 분은 염불을 통해 진정한 자기자신을 만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쁜 짓을 그만두시오」라고 하는 것, 그것은 진정한 자기자신을 알 수 있는 것이요,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염불을 한다는 것입니다.
용수보살도
또한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염불을 하며 살아갔습니다. 그것을 회심참회(죄 깊음을 자각하고 깨닫는 것)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염불 하나로 족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하는 좋을까?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문법(聞法)하는 것, 즉 법(法)을 듣고, 가르침을 듣는 것입니다. 법연성인, 신란성인과 똑같은 신심에 서서 법연성인, 신란성인과 하나가 되는 것, 그 방법은 문법(聞法)하는 것입니다. 적극적 문법인 것입니다. 적극적이라는 것은 스스로 발을 들어 생명을 버려서라도 물음을 구하는 것과 같은 적극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현실을 받아들여 묻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가정이 있습니다. 부인이 있고, 아이가 있고, 또는 독신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상황이 있습니다만 자신에게 놓여져 있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을 밀어제치지 않고 거부하지 않으며 대처해 가며 묻는 것입니다. 꽃을 키우려고 해도 벌레가 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벌레를 잡아 주어 꽃을 돌보는 것, 물이 필요할 때는 꽃에게 물을 주는 것, 이와 같은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자기의 가정은 정말로 잘 되어 가고 있는 지, 직장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 것인가 등. 그 문제와 대처해 가는 것, 알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물어가는 것이 문법(聞法)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선생님은 3가지 말씀하셨습니다. 문법(聞法), 근행(勤行), 염불(念佛). 문법하는 것, 불단에서 근행하는 것, 지금은 와찬(和讃)이나 정신게(正信偈)가 보급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읽는 것, 나무아미타불과 염불의 연습을 하는 것, 그렇게 하면 법연성인(法然上人)과 신란성인(親鸞聖人)과 똑같은 신심염불(信心念佛), 신심결정(信心決定)으로 염불을 읊어 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본문은
2003년 6월 1일 제4회 호지회(護持会)총회에서 사사키겐고선생님「히로시마겐 토요히라 도장 도장주(広島県豊平道場、道場主)전 초등학교 교사」의 법문기록입니다.